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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esting/Ground

독수리의 심장 '이정훈'

네이버 기사 전문


그래서 그의 타구는 항상 내야 수비망을 찢고 관통하는 총알과도 같았다. 그 총알 같은 타구를 외야 깊숙이 날려놓고는 '너무 잘 맞아서 장타가 어렵겠다'고 생각할 무렵 이미 그 부지런한 다리로 2루를 파고들어 흙투성이가 된 가슴을 일으키고 악다문 입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던 것이 그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당시 이글스의 김영덕 감독도 이정훈을 아끼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감독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방망이를 휘두르며 시위를 하는 이정훈에게는 항상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신이 나서 그라운드로 달려나간 이정훈은 곧 또 다른 부상을 안고 돌아왔고, 그런 악순환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정훈의 부진이 시작된 93년부터, 이글스도 전성기를 마감하고 최강팀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악바리'라는 별명을 나누어 가지며 비교되곤 했던 자이언츠의 박정태와 닮은 것은 근성과 재능만이 아니었다. 작은 체격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무리할 정도로 몸을 던지는 헌신적인 플레이를 했고, 그 때문에 얻은 크고 작은 부상 탓에 그 재능을 충분히 펼쳐보지 못했던 비극적인 운명까지도 둘은 닮아있었다.
그러나 박정태는 차라리 너무 치명적인 부상 때문에 긴 치료기간을 보내야 했고, 그 덕에 역설적이게도 완전한 휴식을 취하고 돌아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반면, 이정훈은 충분히 남의 눈을 속일 수 있을 정도의 부상을 겪었던 탓에 몸에 무리가 쌓여 다시는 전성기의 상태를 회복할 수 없었다는 점이 달랐다.


그런 이정훈이 선수생명을 바친 이글스의 유니폼을 벗고 고향팀인 라이온즈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것은 1995년이었다. 라이온즈는 이미 부상으로 만신창이가 된 것을 알면서도 이정훈을 데려갔다. '배부른 사자'로 전락하고 있던 선수들의 투지와 근성을 일깨울 자극제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반대로 이미 회복이 어려울 것을 간파하고 좋은 값에 이정훈을 '처분'한 신임감독 강병철은 생각지 않은 봉변을 당하고 만다. 고참 선수들의 허탈감이 생각 밖으로 컸고, 결국 감독과 선수들의 틈이 벌어지는 계기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와중에 92년까지의 전성기는 지났어도 중상위권을 유지하던 이글스는 95년 6위로 추락했다.





그리워..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런 플레이를 하지 않아.
그리고 사람들을 그를 잊어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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