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갔다가 오는 길.
집에는 갈 수가 없어서 잠시 놀이터에 들렀다.
서윤이에게 문자를 보내봤으나, 과외갔다고...
2 - 4 -6
내가 좋아라 하는 내 핸드폰.
역시나 꽤 실용적인 핸드폰고리.
심심해서 장난질. 39mm
23mm.
웃는게 힘들다.
편의점에서 택배를 픽업했다.
나의 사랑스런 DVD 타이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에 갈 수가 없어서..
집 앞 병원의 커피샵에 들어갔다.
난 종합병원 알레르기 같은 것이 있었다.
수술복차림의 의사나, 환자복을 입은 환자들을 두려워했다.
아니, 두려워했다기보단.. 비위가 상한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이상한 느낌이 들고, 비위도 상하고..
어렸을 때는 종합병원에 가질 못했다.
어쩌다 가야하는 일이 생기면 엄마 뒤에서 눈을 꼭 감고 숨어다녔다.
근데..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병원에 참 많이 입원하셨었었다.
엄마는 아버지 간호를 하셔야하고.. 나를 집에 혼자 둘 수도 없고..
근데 더 큰 문제는, 당시에는 입원실에 어린 아이들의 출입을 금지했었다는 것이다.
엄마 손을 잡고 아빠 병문안을 가려고 하면,
엘레베이터 앞, 계단입구에서 항상 실랑이가 벌어졌다. 난 그런 상황도 참 싫었었다.
어떤 날은 경비아저씨 눈을 피해서 운좋게 몰래 들어가는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1층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는 날도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서울대학교병원이었을거다.
엄마랑 같이 올라가려다가 실패하고.. 엄마가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셨다.
먹고 싶은거 고르라고 해서 내가 고른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민트맛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당연히 뭐가 뭔지도 몰랐었고..
엄마가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여기서 기다리라고.. 금방 내려온다고..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린애 입맛에 민트맛이 맞았을리가 없지..
아이크스림 맛도 너무 이상하고, 엄마도 안오고...
혼자 1층 의자에 앉아서 울다가 토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 꽤 커서 까지도 - 종합병원에 가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한 기회에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고..
친구 손에 끌려서 신청서를 작성한게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는 종합병원에 가는 일이 좀 수월해졌고...
또.. 아버지때문에 병원에 있는 날이 많았고.. 점점 병원이 익숙해지고..
병원 어디에 뭐가 있는지 남한테 알려줄 정도가 되어버렸고..
수술진행현황 전광판에 엄마의 이름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수술 한 번 못해보고 그렇게 떠나보낸 아쉬움이 좀 덜하지 않을까..
내가 너무 무능하다는 생각들,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후회..
내가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 다른 이유에서도 - 죄책감은 좀 덜하지 않을까..
만약에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엄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살려냈을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엄마가 얼마나 서운했을까...